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엘 슈마허 (문단 편집) === 그의 사기 캐릭터 전설 === * 첫 우승한 레이스는 1992년 12번째 레이스였던 벨기에 GP. 1년 전 F1 데뷔전을 치렀던 스파 서킷에서 슈마허는 감격적인 첫 우승을 기록한다. 비가 내리던 상황에서 30랩 째에서 트랙을 벗어나 타이어에 이물질이 묻어 그립이 떨어지자 레인 타이어에서 슬릭 타이어로 타이어를 교환했는데, 타이밍 좋게 비가 그쳐 선두 자리를 꿰차며 여유있는 우승을 차지한다. * 너무나 유명한 1994년 스페인 그랑프리. 경기가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신죠 나오키#s-1.3|5단 기어 외에는 모든 기어가 작동이 안 되는]] 치명적인 변속기 트러블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상태로 '''30랩 이상을 달려서 2등으로 완주해 [[포디움]]에 섰다.''' 5단만으로도 피트인은 물론, 저속코너에서 재가속까지 하는데 시동 한 번 꺼트리지 않고 페이스를 냈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1991년 브라질 GP 당시 [[아일톤 세나]]는 6단 기어만 작동하고 나머지는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순전히 6단 기어만으로 남은 구간을 완주했다. 그나마 당시 세나는 6~7바퀴 남았으니 망정이지, 슈마허는 정말 최악이었다.][* 당시 슈마허는 개막전인 브라질 GP의 우승을 시작으로 파죽지세의 4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만약에 스페인 GP에서 기어박스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슈마허는 F1 역사상 전무후무한 개막전부터의 7연승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뒤이은 캐나다, 프랑스 GP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 슈마허는 전성기 동안 수많은 명경기를 연출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1998년 헝가리 그랑프리다. 당시 [[맥라렌 메르세데스]]의 [[맥라렌 MP4/13]]은 [[제바스티안 페텔]]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독재하던 시절의 [[레드불]] [[르노]], [[루이스 해밀턴]]이 7번째 챔피언을 달성하던 시기의 메르세데스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성능을 보여줬고, 페라리의 F300은 간신히 맥라렌 뒤 꽁무니를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시 퀄리파잉을 보면 맥라렌 듀오가 1-2위를 차지하고 슈마허가 3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경기도 마찬가지였고, 레이스 중반까지 슈마허는 3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벽 없는 모나코"로 불릴 만큼 악명 높은 헝가로링의 추월 난이도 특성을 이용해 당시 페라리의 테크니컬 디렉터였던 로스 브런은 유명한 3 스톱 작전을 시행한다. 일부러 두 번째 피트스탑을 짧게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차량으로 페이스를 확 끌어올리며 순위를 올린 후, 세 번째 피트 스톱을 진행한 뒤 트랙에 선두로 복귀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슈마허는 2번째 피트스탑 직후 18랩동안 맥라렌 듀오보다 25초나 더 빨리 주행하면서[* 랩당 1.3초. 페라리의 작전을 본 맥라렌은 당시 2위로 달리고 있던 [[데이비드 쿨싸드]]를 불러들였지만 결국 순위를 빼았겼다.] 선두 자리를 꿰찼다.[* F1에서 랩당 1초 정도가 차이가 난다는 것은 거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만큼이나 절망스러운 간격이다.] 마지막 피트스탑을 하고도 [[미카 해키넨]]과 쿨사드를 유유히 앞서면서 '재급유 시대'의 기념비적인 경기를 우승으로 장식했다. 로스 브런의 탁월한 작전과 슈마허의 놀라운 작전 수행능력이 빛을 발했던 경기다.[* 이런 패턴으로 슈마허가 우승한 경기는 베네통 시절부터 있었는데 94년 프랑스 GP-유럽 GP, 95년 태평양 GP, 99년 산 마리노 GP 등이 있다. 과거 재급유가 허용되던 시절에 [[루이스 해밀턴]]이 이를 따라한 적이 있었으나 한번도 우승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오로지 슈마허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 2002년 시즌에는 총 17번의 레이스가 있었는데 슈마허는 17번 모두 포디움에 섰다. 당연히 모든 레이스 완주.[* 그는 완주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드라이버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모터스포츠에서는 완주라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드라이버가 뛰어나도 차가 말썽을 부릴 수도 있고, 차가 좋아도 피트스탑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여기까지 극복을 하더라도 오버페이스로 주행하는 다른 드라이버와 충돌을 할 수도 있다.] 그 중 우승이 11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이라고 불린다. * 2004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선 멀쩡한 사람은 절대 안 쓸 '''4스탑 전략'''을 사용하고 우승했다. 상술한 1998 헝가리 그랑프리와 비슷한 원리였다. 당시 프랑스 그랑프리가 열리는 서킷은 매그니 쿠어 서킷이였는데, 이 서킷 역시 헝가로링 못지 않게 높은 추월 난이도와, 저단 재가속이 매우 중요한 저속 코너들이 많은 서킷이였다. 르노의 R24는 페라리 F2004보다 뒤쪽에 치중된 무게 배분과 페라리보다 회전수는 낮지만 토크가 좋은 엔진이 매그니 쿠어 서킷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했다. 이러한 점은 레이스 스타트 상황에서도 이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르노는 이 프랑스 그랑프리 외에도 폭발적인 스타트 장면을 자주 보여준 바 있다.] 추월 난이도가 매우 높은 매그니 쿠어 서킷에서 이러한 작전을 사용한 것이다. * 2003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는 피트 스톱 주유 중에 차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순식간에 터져서 놀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슈마허는 가만히 있고 소화기로 불을 끄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로 출발했으며 이 소동으로 인하여 약 '''15-20초 정도의 타임로스'''가 있었지만, 그날 결과는 '''우승'''했다.[* 퀄리파잉에서는 '''탑3 팀의 기록이 1초 내로 모인다'''. 15초 차이면 이미 우승은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한데 시간을 씹어먹었다고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 2003년 캐나다 GP에서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경기 대부분을 오로지 브레이크 없이 기어 조작을 이용한 엔진 브레이킹만으로 우승을 했다. 질 빌르너브 서킷 자체가 브레이크를 많이 써야 하는 곳임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결과였다. * 2006년 브라질 그랑프리. 은퇴를 선언하고 마지막 레이스였기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대회였다. 위에도 적혀있듯이 근성의 레이스였으며 챔피언십 리더 [[페르난도 알론소]]와는 포인트 10점 차로 슈마허가 우승, 알론소가 리타이어해야만 동점이 되고 우승 횟수에서 앞서는 슈마허가 챔피언이 되는 산술적인 상황. 허나 전날 예선 Q3에서 기어박스 트러블로 예선 10위에 그친 데 반해 알론소는 2위를 차지했다. 사실상 챔피언은 물 건너간 셈이었다..[* 이는 바로 전 라운드였던 일본 그랑프리에서 슈마허가 엔진 블로우로 인해 시즌의 판도가 해당 경기에서 우승한 알론소에게 매우 유리하게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마허는 10위에서 출발해 레이스 초반 계속된 추월을 거듭하던 중 6랩 1번 코너에서 슈마허의 왼쪽 뒷바퀴와 [[지안카를로 피지켈라]]의 프론트 윙이 접촉해 펑처가 나고 만다. [[파일:racefansdotnet-21-10-22-00-15-17-10.jpg]] 너덜거리는 타이어로 리타이어를 해야 정상일 상태에서 억지로 피트인을 하고는 꼴찌로 내려앉았는데 거기서부터 [[싱하형|형 왔다]] 쇼가 시작되었다. 레이스 중반부 두번째 피트스탑을 한 후[* 이때 경기 끝까지 주행할 수 있을 양의 연료를 주입했다.] 바로 다음 랩에 패스티스트 랩을 찍었다.[* 연료통이 가득 찬 상태에선 차량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패스티스트 랩을 찍기 어렵다.] 레이스 종료 직후 멈춰선 슈마허의 차량을 카메라가 잡아주었는데, 걸레를 넘어서 휠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도 좋았을 정도였다.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었다. 피지켈라와의 접촉으로 인한 피트스탑 후 트랙에 복귀했을 때는 백마커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순위는 4위를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